1. 실패에 대응하는 것이 정부 본연의 역할
정부 스타트업 창업 정책의 본질적 목표는 국가의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적인 창업 기업이 나타나 자라날 수 있도록 창업생태계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소중한 국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다양한 창업 지원 사업 및 투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을 촉진하는 ‘창업진흥’ 부터 창업기업의 성장을 돕는 ‘창업지원’ 사업과 함께 스타트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모태펀드 출자 사업까지 대한민국 스타트업 창업의 시작과 성장 과정에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부의 든든한 지원 정책이 있습니다. 하지만 창업기업의 폐업과 마무리, 누군가 실패라고 부르는 그 과정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창업과 성장은 지원하지만 실패에는 거리를 둡니다. 나아가 때로는 실패한 창업자들에게 엄정히 책임을 묻고 사회적, 법적으로 이들을 처벌하는 일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공적 지원을 근간으로 한 창업생태계에서의 실패는 공적 지원과 기대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지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칭업자에게는 사실상 강력한 공적 제재가 가해집니다.
그러나 혁신은 안전한 화강암 바위가 아닌 실패의 숲에서 자라나는 꽃입니다. 스타트업 창업은 본질적으로 될 만하고, 실패하지 않을 위험이 낮은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장, 새로운 기술, 새로운 방법론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신항로 개척, 고위험 창업입니다. 때문에 ‘스타트업 창업’을 진흥하고 촉진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수 없이 많은 무모한 도전과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패’를 야기하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창업의 ‘진흥’이 공적인 과제라면 창업의 ‘실패’도 공적인 과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업의 진흥과 성장에는 그렇게 자주 모습을 보이는 국가가 창업의 ‘실패’에 대해서는 도무지 나서고자 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모두가 선호하는 시장이 성공하는 자리가 아닌 시장이 실패하는 곳에서부터 그 근간을 다져야 합니다.
대한민국 창업생태계에서 국가는 그 어떤 주체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모태펀드 출자부터 각종 창업지원 정책까지 정부 자금은 물론 금융기관 출자 자금까지 국가의 지원과 리더십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 영향력만큼 정부는 대한민국 창업생태계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벤처투자 주식회사 및 정부, 준 공공 정책자금을 운용하는 각 기관들은 스타트업 혹한기 수 없이 많은 스타트업들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정책 LP로서 어떠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는 유니콘의 꽃밭에서 잔치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피어날 토양이 실패의 홍수 속에 유실되지 않도록 보존하고, 실패로 쓰러진 나무들을 불태우느라 숲이 타오르지 않도록 관리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 마무리 가이드 북은 스타트업들을 위해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 창업생태계에서의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총론과 함께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합니다.
2. 투자 및 정부 지원 사업 관련 사후관리에 있어서의 정책적 변화의 필요성
첫 번째 핵심 과제는 투자계약 및 정부지원 사업에 대한 사후관리 가이드라인 마련입니다. 기본적으로 국민 세금에 기반을 둔 출자 및 지원 사업과 관련해서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투자 및 지원 기금의 사용에 있어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스타트업 창업은 본질적으로 될 만하고, 실패하지 않을 위험이 낮은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 신항로 개척, 고위험 창업입니다. 스타트업 창업은 실패와 손실의 바다로 항해하는 것인데, 그 항해의 경로에서 위험이 더 해질 때마다 혹은 실패할 때마다 강력한 제재가 가해진다면 더 이상 항해에 나서는 사람은 없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 자금이 들어간 투자 및 정책자금 지원에 있어서 모럴 헤저드를 방지하기 위한 적정한 규율과 사후감독은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규율과 감독이 스타트업 기업의 위기 극복 및 회생, 마무리를 가로막는 요소가 되지 않도록 적정한 정책적 방향성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각 투자자의 투자계약상 동의권 행사 과정에서 정책펀드 운용사인 투자자와 정책금융기관이 소위 다운라운드 투자에 따른 저가 신주발행, M&A, 폐업 등 불가피한 조치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적정한 재량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줘야 합니다. 특별히 고금리와 같은 거시적인 수준의 급격한 환경적 변화 속에서는 선제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정책펀드 운용자인 투자자가 각 동의권 행사 과정에서 보다 유연하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나아가 스타트업의 마무리 및 정리 과정에서 대표자의 횡령, 배임 및 악의적인 폐업 등이 아니라면 주식매수청구권 및 위약벌 행사 등 불필요하고 무리한 사후조치들이 과도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적정한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스타트업 정리 조정 절차 및 조정기구 마련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 폐업 및 정리 과정에서의 적정한 이해관계자 조정 절차 마련입니다. 현재는 기업 파산 시 투자자, 금융기관, 채권자, 정부 보조금 집행기관 간의 이해 충돌이 빈번하게 분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 회생과 파산 절차 이전에 창업자, 투자자, 정책기관이 참여하는 사전조정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정부 R&D 지원금과 정책자금에 대해서는 전액 환수 원칙에서 벗어나 성과 기반 환수와 재도전 연계 감면 모델을 도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공공과 민간이 함께하는 '스타트업 정리·재도전 조정기구'를 설립하고, 스타트업 마무리 과정에서의 패스트트랙 조정 절차를 도입하며, 스타트업 마무리 과정에서의 이해관계자 조정 및 정비가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의 정책적 방향의 정립 및 제언들은 스타트업 창업기업의 실패가 창업자 개인의 삶의 실패와 창업생태계의 실패로 비화되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들입니다. 그 어떠한 정책으로도 스타트업의 실패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한다면, 우리는 개별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실패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이 넘치는 활력있는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